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각 국가간의 이해관계에서 정치적인 타협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카드이다. 힘의 지나친 불균형은 전쟁을 쉽게 결정하게 만든다. 유럽의 2차대전은 독일이 영국, 프랑스보다 지나치게 강력했기 때문에 발발했다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1,2차대전 직전 인구로 독일 > 영국 + 프랑스). 그래서 독일은 전 후 네 조각으로 강제 분리되는 조치를 당했다. 이 조치는 EU라는 새로운 전쟁방지장치를 고안해 낼 때가지 계속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지나치게 강력했다. 일본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인 중국은 일본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내분을 겪고 있었다. 소련은 러일전쟁 이후로는 아시아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침략행위는 힘의 논리로만 본다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을 공격했다. 미국은 가장 큰 바다를 건너 태평양에 있었으며, 유럽의 전쟁을 지원하는 중요한 세력이었다. 일본이 중국의 일부는 점령할 수 있어도, 미국을 점령하는 것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기 전에도 일본에서조차 미국과의 장기전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태평양을 끼고 있어서 장기전이 확실시 되는 것이 태평양 전쟁이었다. 일본은 왜 이 전쟁을 시작했을까?
   위에 설명한 배경과 함께, 책은 이른바 '총력전 연구소'라고 이름붙여진 작은 기관에 대한 호기심으로 독자를 유인한다. 이 연구소에서는 '미국과의 전쟁은 필패'라는 결론을 전쟁 직전 일본 내각에 전달했다. 이 연구소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고 무엇을 하였는지를 쫓아가 보는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쇼와16년여름의패전1941년일본은어떻게무모한전쟁에뛰어들었나
카테고리 정치/사회 > 국방/군사
지은이 이노세 나오키 (추수밭,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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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알다시피, 2차대전은 자원 전쟁이었다. 특히 석유의 전쟁이었다. 독일은 석유를 얻기 위해 무리하게 소련을 침공했으나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석유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를 통해 중동으로 넘어가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독일에 짐만 되었다. 일본은 석유를 얻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침공했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는 일본을 석유부족으로 몰아넣었다. 일본은 석유를 찾아 동남아시아를 공격했고, 이는 미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하지만 사실을 열거하는 것은 좋으나, 일본의 우익의 시각이 은연중에 녹아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책에는 일본 우익의 시각이 상당히 들어있다. 책에 의하면, 미국은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의로 일본에 석유를 공급하는 것을 중단했다. 말하자면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을 유도했다. 미국으로부터 전쟁을 유도당한 일본은 그들 (총력전 연구소)이 보기에도 불리한 전쟁에 말려들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내각이라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당시 일본의 내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결국 총력전 연구소의 결과와는 달리 내각은 전쟁의 승산이 있는 쪽으로 숫자를 억지로 변경하여 전쟁을 결정한다. 내각의 책임자였던 도조 히데키는 천황의 명에 따라 전쟁을 하지 않고자 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결정하였다고 책은 기술하고 있다. 참 위험한 일본 우익의 시각이다.

   책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점은 일본과 미국과의 전쟁이었다. 일본의 아시아 침공은 저자의 안중에 없다.  책의 요점은,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것은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대일 석유수출금지 조치를 통해 유도했기 때문이며, 당시 일본의 내각은  이 불리한 전쟁을 막을 수 없는 구조였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한심한 변명인가. 미국이 대일석유수출금지를 하기 전에 일본이 중국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 땅은 애시당초 일본 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을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떤 변명을 둘러대건 간에 일본의 욕심 때문이다. '강도와 강도가 싸운다고 해서 그 들 중 어느 한 쪽이 더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며 둘러대지만, 강도와 강도가 싸운다고 해서 그들 중 어느 한 쪽이 덜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시종일관 '일본은 내키지 않는 전쟁에 나섰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중국도 내키지 않는 전쟁을 치렀고, 한국은 내키지 않는 점령을 당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내켜서 했건 유도당했건, 그 이전에 일본의 잘못을 명백히 직시하길 바란다.

   또한 이 책은 시종일관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가 실제로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도조 히데키는 천황의 명을 따르는 충신이었으며, 천황이 전쟁을 피하라고 지시한 것을 따려르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각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도조 히데키가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최고 위치에 있는 자가 일본의 전쟁을 막지 못하면 누가 막는다는 말인가?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그 문제 또한 일본에서 가장 권력이 막강한 자가 고쳤어야 한다. 그는 기를 쓰고 전쟁을 반대했어야 했지만, 내각에서 더이상 전쟁을 반대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전쟁을 결정했다. 도조 히데키가 실제로는 전쟁을 원치 않았으므로 억울하다는 주장은 그 주장이나 논리에도 수긍할 수 없지만 그마저도 지나치게 궁색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에서 열거하는 당시의 전쟁결정 과정에서 한국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있었고, 일본의 전쟁상대인 미국이 있었고, 일본이 전쟁을 수행중인 중국 또한 전쟁여부를 결정하는데 고려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한국은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전 여부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다.

   만일 일본이 중국에서 적당한 선으로 철수하고 미국과 조약을 맺었다면, 한국은 아마 아직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지금 독립을 하고 있지만, 대신 태평양전쟁 기간동안 심한 수탈을 겪어야 했다. 이 결정과정에 영향을 주기에 한국의 힘은 지나치게 미약했다.
Posted by 당근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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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직접적으로 겪은 경험에만 의존하는 바보가 있고, 남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현자가 있다.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에 대해서 알기 위해, 직접 전쟁을 경험할 필요는 없다.

전쟁이 시작된 것은 인간의 역사보다 이르고, 역사를 기록하지 못하는 시절부터 전쟁은 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오래된 역사에도 전쟁은 반드시 기록되어 있다.

전쟁의 실상을 알기 위해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기록된 영상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참혹한 전쟁의 영상은 그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예를들면,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잔인한 전투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영상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왜 그런지는, 책을 보면 안다.

이 책은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소련간의 전선에서 소련이 반격을 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 스탈린그라드전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서해역사책방 7)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안토니 비버 (서해문집,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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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전쟁에서는 전쟁 후 승자가 패자를 다루는 데에 규칙이란 없었다. 약탈, 강간 정도로 그치면 준수해서 이후 점령지를 다스리는데 무리함이 없는 정도에 보통은 점령후 주민 일부를 노예로 팔아치우는건 당연했고, 학살이 당연시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우세한 무력을 이용해서 인간의 공포를 불러일으켜 점령지를 다스리기 위한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고, 다스리지 않기 위해서는 거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몇 년~몇십년간 전쟁보상금을 내야 하거나 아예 도시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은 우리에게 생생한 증언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이마저도 대개는 역사가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걸러진 승자에 의해 써진 역사가 전해내려오는 것이 저 정도 수준이다. 승자가 자신의 기록을 남길 때 어떻게 왜곡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가장 최근에 경험한 가장 참혹한 전쟁은 세계 2차대전일 것이다. 그 이후 6.25(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여러 차례의 중동전쟁과 이라크전쟁등이 있었다. 그러나 6.25를 제외하면, 강대국과 약소국의 전쟁이거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 정보화의 영향, 또는 제네바협정을 어긴 측이 여론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관계 등등으로 인하여 일반사람들에게 전쟁의 실상이 그대로 전달되기는 어렵다. 6.25의 경우 그 실상이 우리에게 직접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예를 들어 노근리사건이나 기타 여러가지 양민학살의 문제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와 미군의 관계나 우리나라 내부의 보수/진보 갈등과 복잡하게 엮이는 문제 등으로 더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진상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이 어렵고 또 전쟁 당시에 남은 실제 기록을 찾기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의 경우, 물론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기록이나 증언을 확보할 수 있는 비율은 적다고 하더라도, 워낙 전세계적으로 겪은 광범위한 전쟁이라서 우리에게 전쟁의 그 생생한 실상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좋은 학교이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하고 참혹했던 그리고 잔인했던 것으로 알려진 전투가 바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다.




스탈린그라드전투에 참여한 군인의 증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간의 경과를 따라서 자세하게 설명하였고,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과 소련군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을 잘 묘사하였다.

마치, 죽을 것을 알고도 총 한 자루 없이 강을 건너 죽은 동료의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병사에게 한 인간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희망 따위는 있을 리 없는 것 처럼, 도저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는 스탈린그라드라는 지옥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였다.
Posted by 당근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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