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망원경은 좋은가요?
  망원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급히 망원경을 골랐을 때에 나오는 질문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천체망원경을 사면, 십중팔구 머지않아 도로 되팔고 다른 망원경을 사거나 혹은 이 취미를 접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람은 기회비용이 발생할 때 갈등하게 된다. 천체망원경을 구입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돈이 많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망원경을 다 모아서 수집해도 되고, 직접 사람을 고용해서 최강의 광학계를 설계해서 망원경을 직접 만들어도 된다. 돈이 넘쳐난다면 말이다. 물론, 그런다고 '밝게 잘 보이고, 상이 선명하고, 상이 예리하고, 시야가 넓고, 분해능이 좋고, 이동성까지 좋은' 망원경은 만들 수 없겠지만, 그래도 돈이 많이 투입될수록 성능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돈이 2배로 투입된다고 무조건 성능이 2배가 되지는 않는다. 성능을 수치화하긴 어렵지만 굳이 애써 예를 들어보면 돈이 2배일 때 성능이 2배이면, 돈이 4배가 되면 성능은 3배, 돈이 8배가 되면 성능은 3.5배 뭐 이런 식이라고 생각하는게 무조건 2배로 늘어난다고 보는 것보다 더 맞을거다.

  그렇다면 적절한 선에서 자금을 들여서 망원경을 고를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망원경을 처음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이 망원경은 얼마나 보이나요?", "이 망원경은 잘 보이나요?" 정말 간단한 질문들이지만, 정말 대답하기 어렵다. 똑같은 대답을 해도 나중에 와서 어떤 사람은 "님 말이 맞더이다" 혹은 어떤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추천해줘서 망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 보자. "페라리가 좋은 차인가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차라고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코란도를 타는 사람보다 좋은 차를 탄다고 생각을 하겠지. 그런데 만일 이 질문 앞에 (오프로드를 달리고 싶은데)라는 조건을 덧붙였어야 했는데 질문자가 이를 생략했다면 어떨까. 

 

저렴한 가격에 큰 구경을 사용할 수 있는 돕소니언 방식 : 200mm 구경에 100만원 안쪽이다.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상을 보여주지만 비싸고 구경은 작은 고급굴절. 200mm 구경이면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망원경 구입에도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망원경을 사는 것은 돈을 지불하는 일이므로 당연히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또한, 망원경 경통 뿐 아니라 가대나 접안렌즈 등의 악세사리를 장만하면 경우에 따라서 망원경보다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수십만원을 들여서 산 망원경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누구나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망원경을 사기 전에는 시장조사와 제품조사가 필요하고, 먼저 사용해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심지어 10만원짜리 하드디스크 하나 사는 데에도 수많은 댓글들을 보면서 어떤 하드가 안정적인지 고민하는 시대인데, 망원경 하나 사는데 그만한 고민 정도는 해야지 않겠나. 

  문제는 더 좋은 망원경일수록 더 비싸다는 것이다.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고, 망원경은 비싸기만 하다. 결정은 어렵다. 망원경 조사라고 해본 사람이면 망원경을 쓰는 기존의 유저들의 의견이라고 들어보면 자기들끼리 의견만 분분하지 어디하나 명확하게 해결해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사람들도 자신의 취미를 하는 것이니 자기 자신의 의견이 당연히 자기 취향을 따라가는 것이다. 

  망원경을 사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달, 목성, 토성, 금성, 화성 ... 밝은 성운 너댓개, 우리의 개념충만한 안드로메다, 또 뭐 ...? 그래, 이거 몇 개 보고 눈구경 하자고 망원경을 사려 했다는 말인가? 그러면 망원경 있는 사람한테 빌붙어서 일단 보고 결정하는건 어떤가. 의외로 별보는 사람들은 같은 취미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는걸 대환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쪽이 숫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취미이고 별보는 사람끼리 한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일 정도로 좁은 바닥이기 때문에, 여기 한두명 골수 별쟁이가 추가되는데 반대할 사람이 없다. 당연히, 망원경 사기 전에 남의 망원경으로 조금 눈동냥 하겠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망원경을 사기 전에 제대로 알고 사자
  망원경을 사게 되면, 망원경값보다 망원경을 쓰는데 드는 돈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망원경을 들고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별을 보러 가보자. 차를 몰고 간다면, 왕복 기름값 + 저녁값 + 아침+ 야식비용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피로회복을 위하여 소진하는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날씨가 좋은 날이 20~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달이 어두운 그믐 근처에만 어두운 성운,성단,은하를 볼 수 있으며, 그 와중에 경조사나 기타 이유로 관측을 나가지 못하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관측을 나가는데 10만원 이상이 깨지는 것을 생각하면, 망원경 100만원짜리 사서 1년 적당히 써도 망원경값 만큼은 망원경을 쓰는데 쓰게 된다.

  차를 산다고 생각해 보자. 차를 타고 주로 뭘 할건지에 따라 차종이 달라질 것이다. 도로에서 스피드를 즐기고 싶다면 스포츠카를 사게 될 것이고, 아이가 있는 집은 안전하고 조용한 세단을 선호할 것이다. 식구가 많은 집은 승합차를, 업무상으로 차를 타고 움직이려 할 경우 연비를 먼저 고려할 것이다. 아마 별을 보는 사람이라면 험한 길이나 눈길도 지나갈 수 있고 많은 짐을 운반할 수 있도록 4륜구동 SUV를 선택할 것이다. 
  
  망원경도 마찬가지이다. 멀리 시골에서 어두운 성운,성단,은하를 보려는 사람은 돕소니언을, 예리한 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급 굴절망원경을, 차가 없어서 망원경을 들고 다녀야 하는 사람은 소구경 굴절을 사야 할 것이다. 용도, 취향, 여건, 예산, 여가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선택은 달라진다.

  사전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고 장비를 덜컥 사는 경우를 수 없이 많이 보았다. 비슷한 경우를 사진 동호회에서도 많이 본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머지않아 장비를 교체하게 되고, 자신이 샀던 망원경의 제 성능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다른 주인에게 값싸게 장비를 넘기게 된다. 물론 학생들 입장에서는 비싼 장비를 사다가 거의 신동품으로 반값 정도로 중고로 넘겨주니 고마운 사람이 되겠지만, 자신이 현재 가지는 취미에서 즐길 줄을 모르고 밑도끝도 없이 장비에만 돈을 쏟아붓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별은 하루 안 본다고 없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구름이나 광공해에 잠시 가려질 수는 있겠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의 시간에서는 사실상 변화가 없는 우주를 보겠다면서 지나치게 급하게 장비를 구입하고 빨리 호기심을 해결하려 할 필요가 굳이 없다고 말이다. 오늘 뜬 별은 내일도 뜨고 모레에도 뜨고, 우리 생애에 별이 뜨지 않는 날은 없을 테니까.


추가. 이 포스팅은 추천을 좀 부탁드립니다. 추천 구걸 같은거 하고 싶지 않은데, 간단히 검색해보니 망원경 정보와는 상관 없거나 올바른 정보를 주지 않는 페이지들이 '천체망원경 추천'이라는 태그로 도배되어 있더라구요. 밑에 손가락모양의 'View on' 버튼을 누르면 추천됩니다.


댓글로 질문하시면 답변도 드립니다. 


Posted by 당근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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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좀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별보는 놈으로 알려지면, 망원경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꽤나 계획적으로 준비를 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 준비없이 막연한 별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망원경을 추천해 주는 일은 어렵다. 


어제 후배 하나가 아는 사람이 망원경을 사고 싶다고 해서,

포스트 잇에 다음과 같이 썼다.

1. 예산
2. 어디서 볼 건가요
3. 무엇을 볼 건가요
4. 얼마나 자주 볼 건가요
5. 차량소유 여부 및 차종

사실 모 천문 동호회의 주소를 써 주고 거기 가서 질문하라고 하려다가,

몇가지 떠오르는 것도 있고 사람마다 취향이 있는데 또 여러 사람이 개인 취향별로 다른 추천을 하면 질문자는 헷갈리기만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냥 위 내용을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오늘, 예산을 20만원 정도로 생각한다는 답을 받았는데,

사실 20만원으로 장난감 같은 망원경을 살 수는 있고 그걸로 목성도 토성도 달도 처음보는 사람은 신기하게 보일만큼 보이겠지만,

30~40만원짜리 하나와 75만원짜리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싼 것은 중국제 제품에 중국 브랜드, 75만원 짜리는 중국제+일제 구성에 일본 브랜드의 것이다.

브랜드 이름보다도, 비싼 만큼 비싼 값은 한다. 처음에는 성능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쓰면 쓸 수록 잔손질이 많이 가고 사용자의 애정에 따라서 수명이 많이 달라지는 것이 망원경이다. 

중국제의 경우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계적인 부분에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거나 오히려 화려하지만 쓰는 사람을 속을 계속 썩이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광학적인 성능에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진다.


다카하시 MT160 (사진에서 경통만)


나는 2001년에 별을 보기 시작했고, 내 망원경을 2006년 5월에 샀다. 망원경을 살 때 이미, 메시에 110개 천체들을 거의 대부분 다 찾아본 뒤였다. 남은 것들은 날씨가 나쁜 여름에 봐야 하고 고도까지 낮은 3~4개 정도였다.

이만큼 별을 보면, 망원경을 보면 그것이 내 물건인지 아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사실 처음에는 중고로 나온 160mm 일제 반사경통 (MT160)을 노렸는데, 알바한 곳에서 돈을 한두달 늦게 주는 바람에 그 이름난 경통을 놓치고 말았다. 이미 단종된 물건이니, 그 경통은 내 물건이 될 팔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망원경을 추천하는 일은 힘들다.

망원경을 살 때 지불하는 돈 보다, 그 망원경을 쓰기 위해서 지불하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내가 별을 보러 다니는걸 보던 누군가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난 돈 주고 별보라고 시켜도 못할거야" 라고 말이다. 작은 여가 시간 중에서, 날씨 때문에 80%는 허탕, 요일때문에 허탕, 중요한 약속 때문에 허탕, 피로도 때문에 허탕, 허탕, 허탕, 허탕, ...

그러다 보니 대략 10년 별을 봤지만 아주 잘 보인 날들은 모두 생생히 기억한다.



망원경을 살 사람이 엄한 업체 말고 믿을만한 업체에 가서 상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주의점도 써 주긴 했는데,

망원경을 사서 조립, 쿨링, 조작, 정리 등등이 귀찮거나 어려워서 방구석에서 썩는 일이 많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망원경에 대해서 길고 긴 시리즈로 포스팅을 해 볼 예정이다. 아마추어 망원경의 모든 것!



하지만, 망원경을 사고 싶다거나 별을 보고 싶다거나 하는 사람들의 질문은 얼마든지 또 대답해줄 용의가 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내 망원경도 1년에 몇 번 쓰지 않고 있긴 하네...
Posted by 당근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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