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좀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별보는 놈으로 알려지면, 망원경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꽤나 계획적으로 준비를 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 준비없이 막연한 별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망원경을 추천해 주는 일은 어렵다. 


어제 후배 하나가 아는 사람이 망원경을 사고 싶다고 해서,

포스트 잇에 다음과 같이 썼다.

1. 예산
2. 어디서 볼 건가요
3. 무엇을 볼 건가요
4. 얼마나 자주 볼 건가요
5. 차량소유 여부 및 차종

사실 모 천문 동호회의 주소를 써 주고 거기 가서 질문하라고 하려다가,

몇가지 떠오르는 것도 있고 사람마다 취향이 있는데 또 여러 사람이 개인 취향별로 다른 추천을 하면 질문자는 헷갈리기만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냥 위 내용을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오늘, 예산을 20만원 정도로 생각한다는 답을 받았는데,

사실 20만원으로 장난감 같은 망원경을 살 수는 있고 그걸로 목성도 토성도 달도 처음보는 사람은 신기하게 보일만큼 보이겠지만,

30~40만원짜리 하나와 75만원짜리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싼 것은 중국제 제품에 중국 브랜드, 75만원 짜리는 중국제+일제 구성에 일본 브랜드의 것이다.

브랜드 이름보다도, 비싼 만큼 비싼 값은 한다. 처음에는 성능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쓰면 쓸 수록 잔손질이 많이 가고 사용자의 애정에 따라서 수명이 많이 달라지는 것이 망원경이다. 

중국제의 경우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계적인 부분에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거나 오히려 화려하지만 쓰는 사람을 속을 계속 썩이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광학적인 성능에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진다.


다카하시 MT160 (사진에서 경통만)


나는 2001년에 별을 보기 시작했고, 내 망원경을 2006년 5월에 샀다. 망원경을 살 때 이미, 메시에 110개 천체들을 거의 대부분 다 찾아본 뒤였다. 남은 것들은 날씨가 나쁜 여름에 봐야 하고 고도까지 낮은 3~4개 정도였다.

이만큼 별을 보면, 망원경을 보면 그것이 내 물건인지 아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사실 처음에는 중고로 나온 160mm 일제 반사경통 (MT160)을 노렸는데, 알바한 곳에서 돈을 한두달 늦게 주는 바람에 그 이름난 경통을 놓치고 말았다. 이미 단종된 물건이니, 그 경통은 내 물건이 될 팔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망원경을 추천하는 일은 힘들다.

망원경을 살 때 지불하는 돈 보다, 그 망원경을 쓰기 위해서 지불하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내가 별을 보러 다니는걸 보던 누군가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난 돈 주고 별보라고 시켜도 못할거야" 라고 말이다. 작은 여가 시간 중에서, 날씨 때문에 80%는 허탕, 요일때문에 허탕, 중요한 약속 때문에 허탕, 피로도 때문에 허탕, 허탕, 허탕, 허탕, ...

그러다 보니 대략 10년 별을 봤지만 아주 잘 보인 날들은 모두 생생히 기억한다.



망원경을 살 사람이 엄한 업체 말고 믿을만한 업체에 가서 상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주의점도 써 주긴 했는데,

망원경을 사서 조립, 쿨링, 조작, 정리 등등이 귀찮거나 어려워서 방구석에서 썩는 일이 많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망원경에 대해서 길고 긴 시리즈로 포스팅을 해 볼 예정이다. 아마추어 망원경의 모든 것!



하지만, 망원경을 사고 싶다거나 별을 보고 싶다거나 하는 사람들의 질문은 얼마든지 또 대답해줄 용의가 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내 망원경도 1년에 몇 번 쓰지 않고 있긴 하네...
Posted by 당근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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